
let's read my blog!
There Will Be Blood
MINJUEUN.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제 3세계 교회는 '마스터'의 코즈를 떠올리게 한다. PTA는 '데어 윌 비 블러드' 후에 '마스터'를 만들었지만 역순으로 보게 되었다. 두 작품은 가족과 종교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한 영화다. 나는 '마스터'보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더 좋았다. '마스터'의 호아킨 피닉스도 대단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제껏 봐왔던 '연기' 중에 가장 강렬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지 않는가 싶다. 그에게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쥐어흔드는 힘이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의 억양과 목소리, 얼굴 표정과 몸짓을 터뜨림은 물론 참아냄까지 원하는대로 컨트롤 하는 것 같다. 화면에 그의 얼굴만이 나와도 우리가 원하는 영화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진흙탕에서 일라이를 때리던 다니엘이 교회에서 역전된 상황을 받아들이는 장면, 그것에 이은 볼링장 시퀀스는 이미지의 변주나 화면의 영상미와 같이 그 자체의 연출도 뛰어나지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과연 '데어 윌 비 블러드'가 빛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연기는 완벽하다.
다니엘이 사업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요소는 가족이다. 일꾼들의 가족들이 머물 공간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까지 제공한다. '가족'. 제 3세계 교회를 운영하는 일라이 선데이 또한 종교적 가치관에 따라 가족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다니엘이 동업자라고 말해왔던 HW는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키운 고아였다. 일라이는 땅을 싸게 팔았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두 인물은 겉으로는 가족을 우선시되는 개념으로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다니엘은 HW를 진심으로 아꼈던 모습과 HW를 재우기 위해 마실 우유에 술을 타는 모습과 같이 대비되는 이미지를 가졌다. 그가 헨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다니엘은 욕심이 많지만 사람을 믿을 수 없다. 헨리는 비록 이복형제지만 다니엘이 그를 편하게 대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다니엘의 동업자는 유니온 회사와의 협상에 헨리를 데려갈 것이냐고 묻는다. 스탠다드 회사와의 협상에서는 헨리를 직접 데려가기까지 한다. 다니엘이 HW의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순간은 HW가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려할 때였다. 또한 자신의 이복형제라고 믿었던 헨리에게 사람은 믿을 수 없다며 속사정을 털어놓는 모습과 헨리가 이복형제의 일기장을 토대로 다니엘을 속인 쌩판 남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모습, 대저택에서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모습 등에서 다니엘은 분명 사업보다 가족을 중요시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니엘은 일기장에서 brother이라는 단어를 본다. 세례받으려는 다니엘을 일라이는 brother로 부른다. 그러나 다니엘은 제 3세계 교회에 다른 사람들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는 사업을 위해서 'I abandoned my boy'라고 외친다. 외치고 또 외친 후에 파이프를 얻어냈다고 혼잣말을 한다. 볼링장에서 일라이는 자신의 교회를 위해 'I am a false prophet. and God is a superstition'라고 외친다. 그러나 외침 후에 일라이가 얻어내는 것은 없다. 밀크셰이크처럼 이미 빨아먹힌 땅에는 남아 있는 게 없다. 두 인물은 모두 가족에 대해서 이중적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니엘은 HW와 헨리를 통해 그가 '가족'에 대해서 인간과도 같은, 그 불완전해서 애증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비췄다. 그러나 일라이는 brother 폴과 아버지를 통해 '가족'보다는 '종교'에 몰두하는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쓸쓸해도 대저택에 사는 다니엘과는 다르게 아무 것도 쥐어주지 않고 끝내 생명을 앗아가기까지 한다. 구원 받기를 원하는 인간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설교하던 일라이는 구원을 원하지만 그것을 얻어내지는 못한다.
우리는 다니엘에게 선택받지 못한 일라이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선택받은 폴은 과연 구원 받았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난다. 다니엘은 일라이에게 폴이 매주 5천 달러를 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땅의 정보를 판 폴에게 500달러를 줬지만 일라이에게는 폴에게 만 달러를 줬다고 말한다. 따라서 폴이 매주 5천 달러를 버는 것 또한 거짓일 수도 있다. 선택받은 폴이 구원 여부는 다니엘의 대사를 통해서만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다니엘의 선택을 갈구하던 일라이는 그가 던지는 볼링공과 볼링핀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일라이의 죽음과 'I am a false prophet. and God is a superstition'라는 대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니엘의 이야기지만 결말에 집중한다면 다니엘과 일라이의 흥망성쇠를 조명한 영화다. '다 끝냈다'는 다니엘의 마지막 대사는 그를 가족은 물론 종교, 신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존재로 보여주는 듯 하다. PTA는 다니엘이라는 '인간'을 다루면서 떼어낼 수 없는 요소들을 흥미롭게 붙이는데 성공했고, 그것들을 다시 떼어내는 것 또한 성공한
또한 음향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영화의 도입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스산한 느낌을 주는 스트링이 효과음조로 가늘고 날카롭게 들려온다. 금을 발견하고 다친 몸을 이끌고 올라오는 동안 역시 스트링이 깔리는데 점점 고조되며 웅하고 울린다. 마치 사이렌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상승을 반복하는 스트링 그러다 다시 시들해지고 다시 고조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울부짖는 것 같은 현악의 울림은 무언가 확실치 않은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이때부터 도안을 해 굴착기를 설계하고 그걸로 땅을 파 기름을 퍼 올리기까지 배음은 극적인 긴장과 위협감을 끊임 없이 주입한다. '조스'(Jaws)의 등장 또는 <샤이닝>의 도끼질 장면과 맞먹는 수준의 보이지 않는 긴장과 싸늘한 공포감으로 휩싸인다. 검은 기름을 길어 올려 퍼붓는 장면에 깔리는 현악의 어두운 톤은 기름의 색채에 다름 아니다.이처럼 시종 긴장과 공포로 관객을 몰아넣는 영화의 스코어는 영국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가 작곡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무대에서 사운드를 믹싱하고 밴드의 초현실적 성향에 공감각적 앰비언트 사운드를 더하면서 보낸 바와 같이 이 영화에서 그의 자질은 명확하게 효과적이고 독특하게 발휘된다. 일관되게 그린우드는 고딕적인 세계 안으로 관객들을 빨아들이고 기괴하게 매혹적이고 영묘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예외 없이 거기엔 아무것도 명확한 게 없다. 비운의 기운은 영화 내의 캐릭터들과 배경이미지에 급속도로 접근해 들어간다.암흑의 선율을 듣는 듯한 공포감과 평온한 듯 소름끼치게 오싹한 분위기를 내는 불협화음조의 오케스트라가 관객을 압도하면서 궁극적으로 영화의 테마를 관객의 의식에 영속적으로 주입한다.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은 어리둥절할 정도. 이처럼 배경음악으로 깔린 스코어는 그린우드가 2004년 5월 임명돼 BBC 오케스트라의 상임작곡가로 있으면서 작곡한 두 곡의 교향악 'Smear'와 'Popcorn Superhet Receiver'에서 발췌하고 유기적으로 재편성해낸 결정체다.폴란드 작곡가 크리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의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1960)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만든 음악을 기초로 만들어진 스코어에는 또한 실험성을 추구했던 저명한 현대음악작곡가들의 영향이 미쳐있다. 영화에서 들리는 비중 있는 음악들 중 'Henry Plainview'에는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Atmosphères'(대기)를 향한 경의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와 유사한 시각적 모티프가 담겨있고, 'Future Markets'의 피치카토(pizzicato) 스트링과 아르페지오 연주는 바르톡(Béla Bartók)의 'Music for strings, percussion and celesta'(현악기와 타악기 및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와 동질의 감동을 준다. 'Eat Him by His Own Light'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메시앙(Olivier Messiaen)의 'Quartet for the end of time'(종말을 위한 4중주곡)를, 'Prospectors Arrive'에선 에릭 사티(Eric Satie)의 피아노와 같은 접근방식이 환기된다.영화에는 또한 H.W.가 사고로 청력을 잃고 고통받는 장면에 주입돼 연주된 아르보 패르트(Arvö Pärt)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프라트레스'(Pärt: Fratres for Violin and Piano),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브람스(Johannes Brahms)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도'(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3. Vivace Non Troppo)이 피날레와 유전개발착공 축가조으로 삽입돼 고전걸작적인 품위를 갖추면서 음악적으로는 아방가르드적 성향이 짙은 영화의 격조를 한층 더 강화한다.바이올린과 첼로를 주악기로 내세워 클래식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소량의 전자음과 타악적 리듬을 현대음악적 영감 안에서 빚어낸 감각적 터치가 드라마의 이면에서 파문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현악(string)만으로 감정의 전반을 휘덮은 그린우드의 클래식 기반 현대음악적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 20세기 초 서부 텍사스 유전을 배경으로 욕망을 쫓는 한 인물의 서사적 공포가 교차하는 영화음악이다. 본질적 영상미 안에서 순수한 배경음악으로 그리고 심리적 사운드로 작용하는 음악을 통해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이나 테렌스 멜릭(Terence Malick) 감독의 위엄 있는 작품들이 상기되는 건 당연하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음악, 놀라움을 동반하는 영상미,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미친 연기, 흥미진진한 스토리,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은 2시간 40여분이라는 러닝타임조차 짧게 느껴지게 만든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 1순위다.
5.0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