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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TIK DER REINEN VERNUNFT
MINJUEUN.
<국어 독서 수행평가에서,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쓴 글입니다.>
(미완성버전, 완성본은 수기로 씀.)
칸트는 현상계에서의 인간 인식을 무질서한 '광상곡'이 아닌, 모든 체계가 전체의 분절들로서 합목적적으로 통합된 '건축술적 통일'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즉, 칸트는 세계의 잡다가 감성에 의해 직관되고 지성에 의해 개념화되어 마침내 인간이 이성을 통해 완전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치밀하게 사유함으로써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인간의 능력과 당위'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시공간 형식에 근거해 세계의 잡다를 직관하는 능력이 감성이라면 지성은 초월적 연역에서의 자기의식의 종합적 통일에 근거하여,
형이상학적 연역에서의 범주 관련한 종합의 규칙들을 통해 현상들을 통일, 판단, 인식하는 능력이다.
어째서 인간의 인식은 인식 주체의 의식의 종합적 통일을 전제하는가? 지성은 감성에 의해 직관된 재료들을 결합하고 통일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 능력은 인식 주체의 동일성을 전제함으로써 표상들을 일관되게 소속시킬 수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표상들의 잡다를 한 의식에서 파악할 수 있음으로써만 나는 내 표상들 모두를 나의 표상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성이 현상을 통일하고 인식하면서 우리는 왜 종합의 규칙이라는 선험적 형식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는가.
이는, 직관의 잡다가 능동적인 지성에 의해 객관과 관계 맺음으로써 종합됨에 있어 우리가 자기의식의 종합적 통일을 전제해야만 했던 이유와 구성적 원리로서 유사하다.
즉, 우리가 올바른 인식을 하기 위해 인식하는 '나'의 종합적 통일을 전제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이란 것은 반드시 '어떤 상태에 놓인 대상'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 대한 경험적 판단을 필연적으로 전제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인식에 있어서 칸트가 제시한 순수지성개념으로서의 종합의 원칙들, 즉 대상의 양, 질, 관계, 양태와 같은 선험적 범주를 필연적으로 전제했을 때만 그것을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칸트가 제시한 종합의 원칙들은 얼핏 단지 지성 능력의 근거를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종합의 원칙들에 대한 칸트의 설명, 즉 하나의 '도식론'은, 세계에 대한 인간 인식이,
한낱 직관의 덩어리들만 가능케 하는 감성과 오직 직관의 종합과 통일을 통한 개념 관련한 지성 능력이 개별적으로 따로 작업하는 분업적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수 지성개념들(범주)이 감성의 순수직관인 시공간 표상과 결합하여 동시적으로 작동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현상에 대한 인식이 순수 지성개념들과 시공간 표상의 종합적 통일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칸트는, 이와 같은 인간 지성의 종합의 원칙들을 동종적인 것들에 대한 결합의 원칙을 포함하는 양과 질 범주의 원칙들과
이종적인 것들 결합의 원칙들을 포함하는 '관계와 양태' 범주의 원칙들로 설명한다.
양과 질의 범주는 수학적인 분량, 수치적 차이와 관련한 항목들을 동종적인 것으로 놓음으로써
각각 '직관의 공리들의 원칙'과 '지각의 예취들의 원리'라는 단일한 원칙들을 포함하는 반면
관계와 양태의 범주는 각자의 항목들이 서로 이종적인, 이질적인 차원에서 결합하는 것들이기에 개별 항목의 성격에 따른 개별적인 사용원칙을 구성한다.
양 범주 사용의 원칙, 즉 '직관의 공리들의 원칙'은 '모든 직관은 연장적 크기'라는 문장으로 설명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직관한다는 것은 그것이 순수하게 단일한 형식에 불과한 선험적 감성형식인 시공간에 현상함으로써
선험적 지성형식인 범주의 하나인 특정한 연장적 크기를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이 말은 거꾸로 우리가 특정 대상을 인식하려할 때 대상의 연장적 크기를 선험적으로 표상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대상에 대한 그 어떤 직관이나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다.
질 범주 사용의 원칙, 즉 '지각의 예취들의 원리'는 직관의 공리와는 다르게 현상의 시공간 형식 뿐 아니라 현상의 질료,
즉 '실질적으로 어떤 밀도적 크기'에 관계하는 원칙이다. 직관의 공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특정한 질적 규정'을 전제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즉, 우리는 대상의 '빈 틀'을 지각하는 것이라 아니라, 대상의 '특정한 질적 내용'을 지각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대상 일반에 대한 선험적 표상인 '지각의 예취'를 필연적으로 전제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러한 점에서 양과 질의 범주가 '동종적인 것들'에 대한 원칙인 이유는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것들이 다루는 항목들이 각각 '하나, 여럿, 혹은 긍정, 부정'과같이 그 수학적 계량에 의해 동질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 범주 사용의 원칙은 '경험의 유추들의 원리'라는 중심 원칙을 기준으로 실체, 인과, 상호작용 개념의 객관적 사용원칙의 3가지 항목으로 설명된다.
경험의 유추란, 주어진 지각을 경험적으로 통일하여 구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 유추는 결국 지각 대상들의 관계 범주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선험적 지성형식으로서의 '관계'라는 것은, 변화를 가능케 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실체 개념, 특정 사태에 대한 원인은 필연적으로 선행하리라는 인과 개념,
그리고 사물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특정 연관 고리를 전제한다는 상호작용 개념의 세부적 이해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관계 범주 또한 3가지 원리들이 모두 시공간 표상을 전제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개념 관련한 인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감성과 순수지성형식 모두와 필연적으로 관계 맺는 것이다.
양태 범주의 객관적 사용의 원칙은 세 가지 실존 개념, 즉 가능성, 현실성, 필연성에 대한 원리다.
이 양태 범주는 앞의 세 범주와는 다르게 칸트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것이다.
즉, 우리가 인식 과정에서 양태 범주의 원칙들을 형식으로서 전제한다는 것은 다른 세 가지 원칙이 대상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설명, 인식, 구성하는 것과 관련한 것과는 다르게,
현상이 현상 인식의 주관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규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서 가능성은 바로 현존의 가능성으로, 현실성은 실재적 현존성으로,
필연성은 경험의 조건과 관계됨으로써만 가능한 질료적 필연성으로 이해된다.
이 양태 개념들의 객관적 사용의 원칙들이 다른 세 가지 원칙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의 사용이 우리에게 간접적으로만 객관적 실재성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다른 원칙들의 사용이 지성능력의 한계 내부에서만 안전하게 사용됨으로써 객관적 실재성을 갖는다면,
양태 개념 사용의 원칙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공간 표상과 양적, 질적 규정에서 벗어난 가상적 존재에 대한 이성 능력의 사용을 형식적으로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감성과 지성, 그것들의 형식,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종합적 사용이 지닌 의미가 분명해진 이 시점에서
현상계, 즉 이 현실 세계에서의 인간 인식은 칸트에 의해 명확히 확인된다.
우리는 사물의 존재 자체를 수동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험의 주관적 조건들에 의해 우리가 인식하는 방식에 따라 사물을 구성적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감성은 잡다를 직관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지성은 바로 규칙들을 통일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우리에게 경험과 인식 상의 객관적 실재성을 가능케 한다."